夏

https://youtu.be/SyXKyIKumVA

같이 들어주세요 : )

현대 패치 딤벨

 

 

 

 

‘분명 여기 있다고 했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있던 디미트리는 앞에 보이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잔잔한 풍경 소리가 그의 귓가까지 들려왔다. 분명 문을 열어서 생긴 바람이 그 풍경을 건드렸으리라 생각했다. 의외로 시끄럽지 않은 자개 풍경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그에 따라 이 가게의 주인은 손님이 왔음을 알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보이지 않는 주인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계세요?라고 말하는 디미트리였다.

 

“네?”

 

그제야 고개를 내미는 이 한여름 날의 헌책방 주인이 보였다. 솔직히 디미트리는 조금 의아했던 것이 가장 먼저 든 감상이었다. 비록 엄청 큰 가게는 아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늘 입소문이 자자했다. 과제에 필요한 책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디미트리는 헌책방 주인은 분명 연세가 지극한 어르신일 거라고 멋대로 단정 지었기 때문일까. 눈앞에 보이는 긴 생머리의 소녀는 확실히 디미트리에게 충격을 주기에 좋았다.

 

“……아. 책을 좀 찾고 있어서요. 주인분이신가요?”

“주인은 아니고,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던 헌책방이었는데 요즘 폭염이 지속되니까 건강이 염려되어…. 손녀인 제가 잠시 도와드리고 있어요. 어머나. 말이 길어졌는데 어떤 책을 찾고 계신가요?”

 

이 책들이라며 리스트가 적힌 쪽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쪽지를 받아 든 여자는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왜 그러는지 알 리가 없는 디미트리는 혹시 전부 없는 책이거나 리스트가 제법 길거나 혹은 직전에 나갔거나….

 

“얼굴이 엄청 빨갛게 오르셨는데.. 괜찮으세요? 밖이 너무 더웠나 봐요.. 이 쪽에 잠깐 앉아 계시면 얼음물이라도 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아니, 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디미트리 자신은 이런 여름에 약했다. 온갖 영화나 책에서는 여름은 여름만의 정서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도 영 모를 일이었다. 너무 덥고, 습하고. 조금만 걸어도 유달리 흰 피부가 붉게 오르는 것은 영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땀이 뻘뻘 나고, 손으로 부채질을 해도 모자를 만큼 더운 나날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얼음물 같은 아주 잠깐의 휴식도 필요한 법이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책은 전부 있는 것들이네요. 금방 찾아서 드릴 테니까 조금 쉬고 계세요."

 

얼떨결에 의자에 앉아 여자가 건네준 얼음컵을 받아 들고는 쪽지를 들고 책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은 한 모금 마시자 부족했던 수분과 더위로부터 피하고 싶다는 욕구가 충족되는 느낌이었다. 컵 안에 있는 얼음들이 컵 안쪽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마치 들어올 때 들었던 풍경소리 같았다.

 

그제야 한숨 돌린 디미트리는 헌책방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규모가 작은 것도 그렇다고 큰 것도 아니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와 눈이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색감, 은은하게 들려오는 자개 부딪히는 소리와 은은하게 맡아지는 고유의 향까지. 헌책방에는 처음 오는 거였지만 간혹 가다 보인다면 걸음이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책방을 익숙한 듯이 돌아다니며 자신이 필요한 책을 쉽게 찾아 팔 한쪽에 올려놓는 여자는 이곳이 매우 편안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많이 다녔으리라 생각했다.

 

“전부 해서 4권 맞죠?”

“네. 정말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니에요.. 일인 걸요! 그나저나 대학생이신가요? 과제 책으로 제법 올드한 걸 요구하셨네요.”

“하하. 교수님께서 그런 걸 추구하시는 분이셔서.”

 

디미트리는 싱긋 미소 지어 답했다. 그의 미소에 답하듯 여자도 방긋 웃었다.

 

이제는 슬슬 일어나야 했다.. 디미트리는 책을 계산하고 여자는 책을 종이가방에 담았다. 한 손에 종이가방을 든 그는 다시 들어왔던 문을 안쪽에서 열었다. 자개 풍경이 작별을 인사하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걸음이 멈칫했다.

 

“그...”

“네?”

“얼음물 감사합니다. 덕분에 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방은 늘 이곳에 있으니까요. 부담 없이 들러주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치, 연인을 마중하듯.

 

등 닫힌 헌책방의 문, 여전히 내리쬐고 있는 햇빛과 숨 막힐 정도로 더운 여름. 어제 얼핏 본 책에서 언급한 여름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정말 아주, 아주 조금은 공감이 되는 기분이었다.